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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끝 무렵, 여러 선진국의 자본주의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다양한 자본주의의 변종들’은 최근 10년간 정치경제학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토론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발견은 ‘새롭지만 낡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라마다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1960년대부터 누누이 지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에도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결점은, 다양한 ‘자본주의의 변종’들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사회적·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모델이 가지고 있는 여러 좋은 제도와 관행을 마치 ‘잘라와서 붙일(cut and paste)’ 수 있는 것과 같은 환상을 심을 수 있다. 특히 스웨덴·네덜란드 등 이른바 ‘좋은 모델’을 찾아 그 제도와 관행을 여과 없이 수입하는 데 급급한 편향이 곳곳에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 점을 잘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더욱 급한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고유한 축적 메커니즘과 그 역사적 발전 경로에 대한 해명이며,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의 수입도 이러한 주체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면 훨씬 더 큰 생산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홍기빈
토요일 야외수업 때 노목희는 아이들을, 이제는 무너져버린 저수지 뚝방으로 데리고 나갔다. 저무는 해가 능선을 스치면서 내려앉는 저녁 무렵에, 수면에서 명멸하는 빛과 색들의 변화를 노목희는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기우는 해에 끌리는 쪽으로 빛들은 떼지어 소멸했고 소멸의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서 신생과 소멸을 잇대어가며 그것들은 어두워졌다. 물 위로 뛰어오른 작은 물고기들이 다시 물에 잠기는 그 짧은 동안에, 물고기 비늘과 눈알에서 빛은 색으로 태어났다. 시간이 빛과 색을 가장자리 산그늘 쪽으로 끌어당겼고, 빛이 저무는 시간과 합쳐지면서 푸른 저녁이 수면 위로 퍼졌고, 색들이 그 위에 실려서 흘렀다. 산그늘에 덮여서 빛이 물러서는 가장자리 수면에서 색들은 잠들었고, 바람이 수면을 스칠 때 물의 주름 사이에서 튕기는 빛이 잠든 색들을 흔들어 깨웠다. 어두운 수면에서 빛들은 무슨 색으로 잠드는 것인지, 바람에 흔들려 다시 깨어나는 색은 잠들기 전의 색이 아니었다. 부서져서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그것들을 빛 또는 색이라고 노목희는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 그것들은 다시 부서지거나 새로 태어나서 말 너머에서 명멸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짧고, 정처없었다.
-김훈, <공무도하> 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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